안녕하세요 iOS Dev 루크입니다
이번 책의 후기는 조금 깁니다.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으며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정리한 내용을 적었기 때문에 책 본문과는 글의 내용이 상이할 수 있습니다.
서평 : “사회의 만연한 능력에 대한 편견을 다시 생각해보게끔 해주는 책, 성공 심리의 이면의 드리운 그림자를 꺼내어 보여준다. 승자의 승리가 온전히 승자의 것이라면 패자의 패배도 온전히 패자의 탓인가. 승자는 오만해지고 패자는 모욕당하는 능력주의를 재고해보자”
능력주의 사회의 이면
현대 자유주의의 능력주의적 정치기획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자유주의 능력주의는 크게 두가지로 정리된다.
1.
고등교육이 신분상승과 물질적 성공 및 사회적 존중을 얻는 길이다
2.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신분상승을 위한 고른 기회를 통해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재능과 노력의 결실을 향유할 자격이 있다.
재밌는 점은 이러한 가치관과 관점이 국가 정책의 중심이 된 것은 불과 몇십년이다.
능력주의는 아메리칸 드림과 잘 연결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어두운 이면이 존재한다
1.
대학학위가 좋은 사회적 평가의 전제조건이 된다면 이는 민주주의를 부패시킨다.
2.
능력주의는 학력주의 문제로 직결된다.
3.
학위를 가지지 못한자들의 기회를 제한하고 포퓰리즘과 같은 정치적인 문제를 야기한다.
능력주의를 통해 노동자들의 학위 상황을 개선하여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시도 자체는 논리적인 것으로 보였으나,
한가지 간과한점이있다
바로 능력주의 중심 사회에 내재한 모욕 insult 의 감정이다.
상층부에 속하지 못한사람들의 실패에 대한 책임은 모두 본인에게 돌아간다.
성공하지 못함 자는 업신여김을 받아 마땅한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모욕은 정신수양을 통해 해결이 가능하다고 해도
계층 전체가 갖는 모욕의 고통은 사회내에서 커다란 부정적역할을 한다.
학력주의는 또한 성공한 자들에게 교만한 마음을 준다.
성차별 인종차별에 대해 반대하지만 교육 받지 못한 이들에 대해서는 상당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생각을 드는 건 어쩌면 현 능력주의 사회에서 자연 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의회에는 고학력자들이 들어가야 올바른 정책을 필 수 있지 않을까?”
의회에서 이루어지는 정책토론의 위태로운 상황을 언뜻 보기만 해도 그런 생각은 멈추게 된다.
정치를 잘하기위해 기술 관료적 전문가들은 필요하다. 하지만 정책 결정에 있어서는 시민들과의 일체감이 중요하다.
위 편견은 역사의 통계자료만 봐도 명확하다.
뛰어난 정치적 판단 능력과 엘리트 대학 진학 능력 사이에는 연관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뛰어나고 똑똑한 자들이 정치를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은
능력주의적 교만에 기초한 허구다.
더 정치를 잘 할 것 같은 사람에게 투표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면 어떻게 더 정치를 잘 할 사람을 구별할 것인가? 능력보다는 시민과의 일체감이 더 중요하다면 이는 어떻게 측정 가능한가?
내가 가진 재능과, 사회로부터 받은 대가는 과연 온전히 내 몫인가? 아니면 행운의 산물인가?
나의 노력은 나의 것이 맞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패배자도 한다.
나의 노력에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는 사회를 만난 것도 내가 시대를 잘 만난 행운의 결과인 것이다.
실력은 경제적 우위와 구별해서 보기가 어렵다.
통계적으로 SAT 점수와 경제적 우위는 우상향그래프를 그린다
우리 사회의 논쟁은 능력주의 자체를 따지기 보다, 어떻게 그 원칙을 실현하느냐를 놓고 이루어진다.
책 제목에서부터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주제를 가져가는데 저자가 책의 끝에서 어떻게 결말을 풀어갈지가 기대된다.
문제를 제기하는 것 만으로도 사회적인 문제를 제시하는 의의가 있긴 하나, 더 나아가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트럼프의 당선
경제와 문화 조류에서 뒤떨어져 버린 사람들의 항의를 나몰라라 한 테크노크라트 정치에의 반발. 포퓰리즘적 저항을 편협한 시각이라고 무시하거나, 이를 다만 경제적 불만의 표출일 뿐이라고 받아들이는 일은 잘못이다.
포퓰리즘적 불만의 원인은?
저자의 생각 =
1.
인종적,민족적,성적 다양성의 꾸준한 증대에 대한 반동
2.
노동계급의 분노를 세계화와 기술혁신의 시대 변화가 너무도 빠른데 대한 당황, 그리고 방향 상실의 결과
>> 집권 엘리트들에게 신경질을 낸다
하지만 이는 대상이 잘못되었다
그들의 분노는 직업 훈련 프로그램 또는 그밖의 정책을 통해 기술혁신에 적응하도록 도와줌으로써 가장 잘 해소할 수 있다.
미국의 선례
1.
민주당이 공화당과 손잡고 시장 중심적이고 기술 관료적인 통치 방식으로 어느정도 전환
2.
금융산업 규제 완화 → 대부분 최상위층에게 혜택이 돌아감
3.
이것이 오바마에 의해 조금 풀이 꺾이나 싶더니 시민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대변하지 못했음
4.
두 정당 모두 포퓰리즘의 반격을 받고 있음.
좌파 우파의 개념이 아니라 열려있냐 닫혀있냐의 개념으로 정당을 바라봐야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궁극적으로
성공과 실패에 대한 관점 부터 재고해 보아야한다.
빈부격차를 그럴싸하게 설명하는 법
미국의 경우 1970 년대 부터 지금껏 늘어난 국민 소득이 대부분 상위 10 퍼센트에게 돌아갔으며
하위 50퍼센트는 거의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이러한 불평등만이 포퓰리즘의 원인인 것은 아님.
능력주의가 성공할 수 있는 핵심은 사회적 상승 가능성 이다
어디서 출발하든 부자라는 결승점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함.
이러한 사회적 상승 가능성은 공화당 민주당 모두가 받을었다.
공정한 능력주의 제도 라는 말이 불러일으키는 심리적 반향
능력주의적 오만.
승자는 자기 성공을 지나치게 자신의 재능으로 치부하고
우연과 행운은 잊어버리는 경향
나 또한 이번에도 운이 없어 합격하지 못했다면, 그 패배의 감정은 어떻게 또 감당했을지 막막하다. 실제로 나의 노력은 고등학교 때나 지금이나 별 달라지지 않았으나, 운이 좋아 좋은 기회를 얻게되었다.
하지만 완벽한 능력주의는 이러한 ‘운’ 의 존재를 부정하며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제거한다.
즉 하면 된다, 라는 말이 양날의 검이라는 것이다.
“안된이유가 안해서” 라는 말로 되돌아 오기 쉽다.
하지만 이는 비단 승자를 욕하기에는 그 책임이 패자들에게도 있다
패자 또한 승자들에게 박수갈채하며 동시에 같은 패자를 조롱하기 때문이다.
능력주의는 이 시대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고대의 인물들은 능력에 더불어 도덕적 판단력을 기술 관료직의 중요한 덕목으로 여겼다.
우리가 겪고있는 기술관료 버전의 능력주의는 능력과 도덕적 판단의 사이의 끈을 끊어 버렸다.
능력주의가 완전히 독인 것은 아니다.
능력에 따른 채용은 분야에 따라 매우 합리적이다
치과의사 또는 배관공을 찾을 경우 그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사람을 찾아다닐 것이다.
또한 능력이 아닌 다른 사항(성별,인종) 에 따라 더 능력이 낮은 사람을 채용하게 되면
더 능력이 있는 사람은 정당하게 항의할 수 있다.
이렇게 능력에 따른 채용이 선하고 분별 있다면 도대체 언제 능력의 헤택이 독으로 변하는 걸까?
‘성공한 사람은 그럴 만해서 성공했다' 라는 신념 즉 승리주의 → 승자들 사이의 오만, 패자들 사이의 굴욕
운이 좋은 사람은 운이 좋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경우가 드물다. 자신이 그런 행운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납득하려 하고 운이 나쁜 사람들도 자신의 당연한 업보일 뿐이라고 믿기를 바란다.
능력주의가 공동체의식을 약화시키는 논리란?
부유함 나의 몫
가난함 = 나의 몫?
내가 부유할 수록 운이 덜 좋았던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힘들어진다
우리 운명이 개인책임이라는 생각이 강할수록 우리가 다른 사람까지 챙길 필요를 느끼기 힘들다.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사회적 변화, 거기에는 능력주의적 함의가 존재한다.
능력주의에 따른 논란들
1.
책임을 강조해 복지국가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관련리스크 부담을 국가 → 개인에게 옮기려는 태도다
2.
사회적 상승에 대한 언어적 포장이다?
3.
불우한 사람들이 자신의 불우함에 대해 얼마나 책임을 져야하는가.
a.
자신의 실수가 아닌 일로 곤경을 초래한 사람만 도와주자 - 허버트 후버, 캘빈 쿨리지
i.
철저히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내용
ii.
자신의 실수가 포함되는 순간 도와주지 않아도 될 명분 발생
사회적 상승의 담론 새로운형태를 취하면서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누구나 자신의 재능과 노력이 허용하는 한도까지 출세할 수 있어야 한다. = 이의가 거의 없는 담론
하지만 이 구호는 꽤 최근에 등장했다 = 40년
시작은 사회적 차별을 해결하자는 의도에서 출발하였다.
대학교육을 사회적 상승의 기본 수단으로 여겼다.
열심히 노력할 것을 주장하고 개인이 각자 책임을 지라 고 훈계? 했다.
훈계했다라는 표현에서 저자의 능력주의에 대한 감정이 드러나는 듯 했다. 정신을 제대로 차리고 책을 읽어야겠다.